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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로 병을 진단한다? 의학의 새로운 후각 혁명

by gureumi94 2025. 6. 13.


최근 과학계에서는 질병을 ‘냄새’로 감지하는 기술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개나 쥐 같은 동물의 후각 능력뿐만 아니라, 인공지능과 바이오센서를 활용한 전자코 기술까지 발전하고 있는 지금, 후각을 이용한 진단은 기존 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탐색합니다.

 

냄새로 병을 진단한다? 의학의 새로운 후각 혁명
냄새로 병을 진단한다? 의학의 새로운 후각 혁명

몸이 보내는 신호, 냄새로 읽다

인간의 몸은 평소에도 다양한 화학 물질을 생성하고 배출합니다. 땀, 숨, 소변, 호흡 등은 단순한 생리현상을 넘어, 몸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생화학적 변화의 결과이기도 하죠. 흥미로운 사실은, 이 배출물들이 질병에 따라 독특한 ‘냄새’를 낸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래전부터 일부 질병을 ‘냄새’로 인식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민간 지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환자의 입냄새나 배설물의 향을 통해 건강 상태를 판단했다고 전해지며, 중세 유럽의 의사들도 소변 냄새를 진단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오래된 지혜가 첨단 과학기술과 만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바로 ‘냄새를 이용한 질병 진단’이라는 분야입니다. 이 분야에서는 ‘전자코(e-nose)’라는 기술이 각광받고 있으며, 이는 후각 수용체를 모사한 센서를 통해 특정 화학 물질의 조합을 분석함으로써 질병 여부를 예측합니다. 또한, 개나 쥐와 같은 동물들이 특정 냄새를 인지하고 암, 당뇨병, 코로나19와 같은 질병을 감별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냄새로 질병을 진단한다’는 개념이 어떤 과학적 기반 위에 있으며, 실제 임상에서 어느 정도까지 응용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이 기술이 의료 분야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를 면밀히 분석해보려 합니다.

 

후각 기술과 의료의 만남: 전자코와 탐지 동물들

‘전자코(electronic nose)’는 기본적으로 기체 상태의 화합물들을 감지하고 분류하는 센서 기반 기술입니다. 이 장치는 여러 개의 감지 소자를 통해 복합적인 냄새의 ‘패턴’을 분석하며, 특정 질병과 연관된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폐암 환자의 숨에서는 특정 VOC 조합이 방출되며, 전자코는 이를 다른 호흡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연구에서는 폐암, 간질환, 신부전, 결핵 등에서 의미 있는 진단 정확도를 보인 바 있습니다. 개와 같은 동물도 중요한 후각 도구입니다. 개는 인간보다 수천 배 이상 민감한 후각을 가지고 있으며, 특정 질병에서 방출되는 미세한 화학 물질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훈련된 탐지견은 대장암이나 유방암 환자의 호흡이나 체취를 통해 질병 유무를 90% 이상의 정확도로 구별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병원에서 활용되는 혈액 검사나 조직 검사와 비교해도 높은 수준입니다. 특히, 훈련된 개는 코로나19 감염자를 공항 등에서 빠르게 판별하는 데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설치류, 꿀벌, 심지어는 선충과 같은 작은 생물도 질병 냄새에 반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탐지 실험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체 후각 시스템은 전자 센서 기술과 결합될 경우, 새로운 진단 장비로서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들이 실용화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존재합니다. 첫째는 냄새의 패턴이 사람마다, 시간마다, 환경마다 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특정 VOC가 반드시 하나의 질병에만 대응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진단의 명확성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데이터 수집과 분석의 정밀도, 그리고 AI 기반의 보완적 기술이 함께 발전해야 이 분야가 임상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냄새로 진단하는 시대, 현실이 될까?

‘냄새로 병을 진단한다’는 말은 한때 민간 신앙이나 동물의 직감 수준으로 치부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 아이디어는 과학기술의 뒷받침 속에 점점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전자코를 비롯한 센서 기술은 이제 단순한 냄새 인식을 넘어서, 의학적으로 유의미한 정보를 도출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고 있으며, 특히 비침습적 진단 방식이라는 장점 때문에 미래 의료의 큰 흐름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멉니다. 각 질병의 냄새 프로파일에 대한 데이터 축적, 사람 간 변이의 고려, 장비의 신뢰도 확보 등은 여전히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러나 이미 일부 의료 기관에서는 전자코 기술을 시범 운영하고 있으며, 탐지견 역시 공공보건 현장에서 감염병 대응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히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건강 정보를 어떻게 얻고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제 혈액이나 조직을 뽑지 않고도, 호흡이나 체취만으로 건강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시대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는 의료의 문턱을 낮추고, 조기 진단과 예방 중심의 의료 체계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후각, 즉 냄새는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인 감각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감각이, 다시 가장 정교한 과학의 도구로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냄새를 통해 병을 진단하는 시대, 그것은 더 이상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